2020. 3. 15.

국역 노상추 일기 1-3(한국사료총서 번역서 11-13) > 신축일기 1781년(정조5) > 5월 큰 달

5월 큰 달

522(갑오) 볕이 남.
선달 한응검韓應儉·선달 박정명朴鼎明·선달 권정우權正遇가 북한산성北漢山城에 머물면서 공부하려고 하므로 나도 유람하려고 함께 갔다. 창의문彰義門을 나와서 세검정洗劍亭에 올라서 잠시 쉬고 바로 북한산北漢山의 대남문大南門에 올라가서 한강의 하류를 내려다보니 행주杏洲 아래로 한 척의 돛단배가 왕래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산골짜기의 울창한 숲속에 절이 있고 골짜기 아래의 좌우에 인가人家가 있었다. 창고가 배치되어 있는 모양새가 산성을 지킬 만하였다. 하지만 산세山勢가 강하고 물이 적고 평지가 전혀 없어서 군사와 말이 산성에 다 들어갈 수가 없다. 지세地勢는 동··북의 삼면이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험준한 벼랑이고 서북쪽 한 면만이 수구水口이므로 성을 쌓고 문을 만들어 중요시하였다. 10일 정도는 피할 수 있는 곳이지만 영원히 의지하고 살 만한 보루가 될 수는 없다. 이날 보광사普光寺에서 묵었다. 각 사찰마다 한 방에는 번승番僧이 기거하고 창고도 설치했는데 9개의 절이 모두 이대로 따랐다.

523(을미) 볕이 남.
보광사普光寺에서 출발해서 보국사普國寺에 들렀다. 각 영의 창고가 차례로 늘어서 있었으며 관성장管城將도 그 안에 두었다. 또 행궁行宮은 동향東向으로 지었는데 대가大駕가 머무는 일이 있게 된다면 여기에서 머무시기 때문이다. 태고사太古寺와 중흥사中興寺 두 절을 들렀다. 중흥사는 총섭總攝이 거주하는데 사령使令과 통인通引에게 명령을 거행하는 것이 마치 영문營門과 같았다. 용암사龍巖寺에 올랐는데 절이 삼각산三角山 제일봉에 있으므로 절에서 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아마 500~600보도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척에서 마주 보인다. 중간에 사정射亭이 있는데 승군들에게 요사料射가 있으므로 각 절마다 모두 사정이 있는 것이다. 사정에 오르니 서쪽으로 멀리 해구海口가 보이는데, 이곳이 가장 높고 서쪽 산은 낮기 때문이다. 이 절에는 경서 공부를 하는 손님이 3~4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나이가 60이 넘어서 머리와 눈썹이 하얗게 되었으니 공명功名을 어느 때에 기약할 수 있을까. 우습고 한탄스럽다.

524(병신) 볕이 남.
한응검韓應儉·박정명朴鼎明·권정우權正遇 세 친구는 공부하러 이곳에 왔기 때문에 여기에 그대로 머물렀다. 김하익金河翼은 나를 따라서 동장대東將臺에 올라가 산천을 둘러보았다. 날이 더워서 각 절을 두루 답사하지 못하고 보국사普國寺 뒤 소성문小城門으로 나왔는데 이곳이 동성東城이다. 산길이 험해서 신발을 벗고 500~600보정도 걸었다. 손가정孫哥亭 계곡 입구를 경유하여 혜화문惠化門으로 들어와서 숙소로 돌아왔다. 순천 군수順川郡守 최범중崔範重용구用久이 휴가를 받아 본가로 갔다가 지금 성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가서 만나니 며칠 뒤에 관아로 돌아가기 위해서 출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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