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5.

월사집 제32권 / 차 하(箚下) 강도(江都)의 축성(築城) 문제를 논하는 차자

월사집 제32/ 차 하(箚下)
강도(江都)의 축성(築城) 문제를 논하는 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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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룁니다. 신이 병석에서 삼가 들으니, 강도(江都)를 간심(看審)하고 온 재신(宰臣)들을 인대(引對)할 때 병조 판서 김시양(金時讓)이 신의 뜻이라 하면서 이 도성(都城)을 지켜야지 강도는 불가하다.”라고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너무도 괴이쩍고 의아했습니다.

이른바 경성(京城)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신도 늘 가져 왔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탑전(榻前)에서 진달한 적도 있지만, 도성의 형세가 대적(大賊)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참으로 도성은 팔방(八方)의 근본이므로 적이 미처 움직이기 전에 근본이 먼저 흔들리면 인심이 크게 무너지고 변방의 군사들이 모두 굳은 결의를 잃어 흙더미가 무너지고 물결이 갈라지듯이 차마 말할 수조차 없는 참담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국가가 먼저 경성 서북쪽 지역의 방비에 주력하여 지난날처럼 적이 깊이 쳐들어와 마구 난입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를 바란 것이니, 그렇게 하면 아마도 그 사이에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경성을 지키는 근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접때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를 경기황해 지역에 보내어 하나의 큰 진()을 설치하여 적을 막아 도성을 엄호하는 곳으로 삼게 할 것을 청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실로 신의 구구한 뜻으로, 도성을 가벼이 버리고 떠날까 걱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만약 자세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범범하게 도성의 형세로 보아 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면, 이는 신의 본의와 다를 듯합니다.

강도로 말하자면, 오늘날의 보장(保障)으로는 이보다 더 나은 곳이 없습니다. 이 적의 기세가 풍우(風雨)와 같으니, 천연의 요새가 아니면 그 예봉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신이 정묘년(1627, 인조5)에 어가(御駕)를 호종하여 강도를 둘러볼 때 이미 전하께 우러러 찬탄하는 말씀을 올렸던 것입니다. 신의 본의는 이와 같을 뿐이니, 지금 어찌 다른 생각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강구해야 할 것은 단지 축성(築城) 터의 넓이를 어느 정도로 잡느냐는 것뿐입니다. 아직 간심(看審)하기도 전에 신이 어찌 불가하다는 말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필시 김시양이 자세히 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 근자에 간심하고 온 제신(諸臣)을 통하여 강도의 형세에 관해 듣고 구구한 염려가 생겨 이에 감히 부득불 진달합니다.

임금이 머무는 곳은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일지라도 성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이 강도는 보장(保障)으로 반드시 가야 할 곳인 경우이겠습니까. 다만 오늘날 강도를 믿을 만한 요새로 여기는 것은 바닷물 때문이지 성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섬 안에 넓게 성곽을 쌓아 본토 백성과 이주해 온 백성들이 모두 들어가 지킬 수 있게 된다면 진실로 매우 좋겠지만, 혹 힘이 부족하고 일에 겨를이 없어 먼저 섬 연안(沿岸)의 방어에 주력하지 않은 채 단지 옛 성의 둘레만 넓힐 뿐이라면, 그 형세상 필시 백성들이 모두 성안에 들어갈 수 없고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들은 반드시 절로 위태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도하여 살고자 하는 백성을 흔들어 놓고 성상을 따르는 백성들의 마음을 꺾어 놓게 될 터이니, 이 또한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될 점입니다. 오직 묘당(廟堂)이 깊이 대책을 강구하여 품처(稟處)해야 할 것입니다.

신은 비천한 질병을 아뢰어 성상을 귀찮게 하고 심지어 내의(內醫)를 보내고 약품을 하사하는 은명(恩命)을 받기까지 하였으니, 신은 참으로 황공하고 감격하여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신의 병은 오래도록 건강을 해친 나머지 생겨난 것이라 오래도록 차도가 없다 보니 여위고 지친 몸으로 병석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때 여러 날 동안 집안에 엎드려 있으면서 이미 거둥하시는 어가를 호종하지 못하였고 또 비국(備局)에서 개좌(開坐)하지도 못하였으니, 인신(人臣)의 분의(分義)상 어찌 감히 이럴 수 있겠습니까. 근심과 두려움으로 애가 타서 병세가 부쩍 심해졌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우신 성상께서는 신의 직명(職名)을 체차하여 공사(公私) 간에 편안하게 해 주소서. 재결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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