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30.

가이드(한글) 아메리카대륙

http://kgheastamerica.blogspot.com/p/index_16.html

71종 '안심글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만 모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7459

지구관청일기(知彀官廳日記)

http://royal.aks.ac.kr/Common/SearchMain
󰡔지구관청일기(知彀官廳日記)󰡕는 조선 말기 궁궐수호 관청인 무위소(武衛所)에서 1874(고종 11) 53일부터 1882(고종 19) 69일까지의 업무를 기록한 일기이다.
1873(고종 10) <인명>흥선대원군</인명>에게서 정권을 넘겨 받아 친정을 하게 된 <인명>고종</인명>은 대궐의 수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1874<관청명>무위청(武衛廳)</관청명><관청명>훈련도감(訓鍊都監)</관청명>에서 500명을 새로 뽑아 훈련도감 지휘하에 1100명씩 5교대로 궁중숙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리고 620일 각 군영에서 가장 우수한 군병을 차출하여 무위소를 창설하였다. 무위소의 총 책임자인 <관직명>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관직명><관청명>금위영(禁衛營)</관청명>·<관청명>어영청(御營廳)</관청명훈련도감 등 3영의 제조(提調)를 겸하였고, <관청명>용호영(龍虎營)<관청명><관청명>총융청(摠戎廳)</관청명>까지도 통솔하였으며, 한성부(漢城府) 치안업무까지 관여하였다. 1879년에는 북한산성에 있던 <관청명>경리청(經理廳)</관청명>을 이에 소속시키고, 총융청 소속의 <관직명>북한성관장(北漢城管將)</관직명> 이하 모든 관원을 무위소에 소속시키면서 무위소는 궁궐숙위뿐만 아니라 수도방위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무위소에서 파수(把守)에 대한 감독이나 군사의 인솔 및 군수품 수송 등에 관한 일들은 특별히 뽑혀온 <관직명>지구관(知彀官)</관직명>이 전담했으며, 이 지구관이 있는 곳을 지구관청(知彀官廳)이라 하였다. 지구관청에는 매일 입직하는 지구관이 파수병의 근태를 살피고 외부인의 출입을 점검하는 등 궁궐 수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이 일기에는 궁궐의 숙위를 포함한 <건물명>종묘(宗廟)</건물명>·<건물명>사직단(社稷壇)</건물명>·<건물명>영희전(永禧殿)</건물명>·<건물명>경모궁(景慕宮)</건물명>·<건물명>경복궁(慶福宮)</건물명>·<건물명>경희궁(慶熙宮)</건물명> 등 모든 궁전의 적간(摘奸)에 대한 기록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장서각 소장 이 일기는 9책의 한문필사본이다. 한 면당 1022자로 기록하였으며, 내제 없이 바로 해당년의 간지와 날짜를 쓴 후 내용을 시작하고 있다. 날짜의 변경은 줄 바꿈으로 구분하였고 같은 날의 다른 기사는 로 구분하였다. 각 책의 기록시기를 살펴보면, 1책은 187453일부터 1229일까지이며 1875년부터 1881년까지는 2~8책에 한 해당 1책씩 나누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9책은 188211일부터 69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임금의 전좌(殿座동가(動駕친전향(親傳香) 때의 시위 상황, 궁중행사 시의 경비관계, 대장 이하 군관들의 인사문제, 군졸의 입번(入番출번(出番전령(傳令) 등에 관한 사항, 사건을 보고하는 첩목(帖目) 등이다. 이 외에 시위군(侍衛軍)에게 지급된 물목기(物目記)나 임금 행차 때의 어가(御駕)를 따르는 도통사·제조·종사관·장관·감관·지구관·서리·고직 등에게 계강환(桂薑丸강분환(薑粉丸오매환(烏梅丸사당환(砂糖丸)이 궁중으로부터 각각 내려진 일도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지구관의 인솔 하에 양화진방수(楊花津防守) 및 각처의 방수군(防守軍)에게 수송된 구급약 및 군수품과 지방관으로부터 올라온 군수물의 목록, 무위소에서 장궁(長弓후궁(帿弓장전(長箭편전(片箭통아(筒兒) 등 무기를 제작한 일, 연말에 달력을 하사한 일, 궁중에서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에 솔씨를 나누어 주어 심게 한 일도 기재되어 있다.
내용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1책에 보이는 의정부에서 새로 정한 궐내파수군지방지수(闕內把守軍支放之需)’이다. 이것은 궐내 파수군에게 봉급으로 지출된 예산이라는 뜻이다. 혜청(惠廳별영(別營훈련도감·진무영(鎭撫營병조·금위영·어영청·사역원(司譯院) 등으로부터 납입된 것이 미() 3,37395, () 35000, () 163() 38() 30() 2(), () 55()이었으니, 당시 궁궐 경호에 따른 예산규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8책에 실린 서총대응시질(瑞葱臺應試秩)’이라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이것은 별장·파총·초관·선기장·감관·별군관·지구관·교련관·별무사·대령포교(待令捕校별초군관(別抄軍官무사선기대(武士善騎隊무예별감(武藝別監장예별감(壯藝別監별대장(別隊將별대마병(別隊馬兵군직선전관(軍職宣傳官사복(司僕사승(司乘사알(司謁사약(司鑰구종(驅從견마(牽馬배마부(陪馬夫춘계방사령(春桂房使令기무아문사령(機務衙門使令북한교졸(北漢校卒승교졸(僧校卒)과 용진(龍津연희(連喜화도(花島) 3()의 교졸들의 유엽전(柳葉箭편전·조총(鳥銃)에 의한 시취방법(試取方法)을 적은 것이다.
또한 8책에 수록된 통리기무아문에 의해 정해진 각군문변통절목(各軍門變通節目)’은 바로 종래의 무위소·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총융청·용호영·호위청을 병합해 2()으로 만들기 위한 약정으로 당시 군사개편을 살필 수 있어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9책의 임오년 410일조에 기록 된 희정당(熙政堂)에서 청나라 사신을 접견할 때 지구관의 지휘 하에 시위하던 일과 동월 14일조에 대관(大官) 조영하(趙寧夏)가 영국 사신을 접견할 때 대궐 아래에서 인천 제물포에 이르기까지의 경비를 준비하는 모습 등에서 당시 조선의 외교 정책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이 일기는 조선 말기의 정세 변화와 함께 개혁된 궁궐의 수비 방법이나 각 영의 통합에 의한 군제 개편의 면모를 살피는 데 좋은 자료이다. 또한 이 일기는 188269일로 끝이 나고 있는데 이날은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난 날이다. 임오군란은 당시 군제 개편에 따른 구식군대의 차별로 인해 발발한 사건이기에 본 일기의 기록은 임오군란의 동기와 배경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儀註謄錄 (의주등록 2건에 각각 숙종과 영조의 북한산성 거둥시 예가 기록되어 있음)

이 의주등록은 예조에서 1706(숙종 32)에 숙종이 재위 30년을 기념하여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은 의식으로부터 1728(영조 4)에 이인좌의 난 진압 후 영조가 회맹 의식을 벌이는 것까지 각종 의식을 거행하는 방법을 적은 책이다.
... 北漢擧動儀, ...
셋째 1712(숙종 38) 4월에 전년 10월에 완성된 북한산성에 국왕이 행차했을 때 이루어졌던 의식으로 親臨北漢時出還宮儀, 親臨北漢出還宮時王世子祗送祗迎儀이다. 북한산에 산성을 쌓고 유사시를 대비하고자 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1703(숙종 29)에 국왕이 성을 쌓을 마음을 먹었지만, 조신들 대다수는 민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도성을 수비해야 하며 입지 조건이 나쁜 북한산에 성을 쌓는 것에 적극 찬동하지 않았다. 국왕이 행차한 17124월에 내성 공사가 완료된 듯하고 1달 뒤에 외성(重城) 공사가 비롯되었다.

표제는 儀註謄錄 四로 적혔다. 표지 뒷면과 첫장에 목차가 두서없이 적혔다. 전체 88건의 의주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1740(영조 16) 9월 개성 성균관에 전알하는 의식이고, 가장 늦은 것은 1772(영조 48) 410일에 북한산성에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가고 돌아오는 의식, 왕세손이 대가를 따르는 의식이다. 북한산성 행차는 1주갑 전 같은 달에 숙종이 이 곳에 와서 머문 것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親臨北漢山城時出還宮儀, 親臨北漢山城時王世孫隨駕儀, ...
北漢擧動時展拜毓祥宮儀, 親臨北漢山城時出還宮儀,...

移御謄錄

移御謄錄
[내용 및 특징]
이 책은 1637(인조 15)부터 1744(영조 20)까지 국왕이나 왕비, 대비, 세자가 한 궁궐에서 다른 궁궐로 거처를 옮기거나 또는 국왕이 종묘나 북한산성에 거둥한 것까지 기록한 책이다. 장서각 유일본이다. 규장각에는 정조대 이후 행행등록이 있고 왕대비 등이 動駕한 기록은 소장되어 있으나, 정조대 이전 국왕의 행행 기록은 없다.

QGis 를 배우자

https://docs.qgis.org/2.18/ko/docs/user_manual/
https://www.slideshare.net/slhead1/1-qgis
https://nonnyong.tistory.com/entry/QGIS-%EC%82%AC%EC%9A%A9%EB%B2%95-%EC%86%8C%EA%B0%9C-%EB%A7%A4%EB%89%B4%EC%96%BC-%ED%8F%AC%ED%95%A8-%EA%B8%B0%EB%B3%B8%EC%82%AC%EC%9A%A9%EB%B2%95-%EC%86%8C%EA%B0%9C

2020. 3. 29.

정창원 유물 검색 https://shosoin.kunaicho.go.jp/bulletin?p=1

https://shosoin.kunaicho.go.jp/bulletin?p=1


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전라도 지역의 문헌수집가 서적상 운당雲堂 이현조

https://taeshik-kim.tistory.com/m/entry/%EC%A0%84%EB%9D%BC%EB%8F%84-%EC%A7%80%EC%97%AD%EC%9D%98-%EB%AC%B8%ED%97%8C%EC%88%98%EC%A7%91%EA%B0%80%EC%84%9C%EC%A0%81%EC%83%81-%EC%9A%B4%EB%8B%B9%E9%9B%B2%E5%A0%82-%EC%9D%B4%ED%98%84%EC%A1%B0?fbclid=IwAR1m0TY3rcNaXK4lx3ogh_xMKuF7EjodYE-TD7fqR54zSeSE-ykTP4N16fA

유춘동의 도서문화와 세책

전라도 지역의 문헌수집가 서적상 운당雲堂 이현조

Heritage Planning: Principles and Process

http://www.haroldkalman.ca/publicationtypes/books/

Heritage Planning: Principles and Process


Harold Kalman, CM, PhD, LLD, CAHP, began his professional career teaching the history of art and architecture at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after studies at Princeton University. He left academic life in 1975, setting up practice as Canada’s first heritage consultant. After training in historic preservation in the U.S. and the U.K., Hal Kalman co-founded Commonwealth Historic Resource Management Ltd., which developed an extensive Canadian and international conservation practice. He specializes in heritage planning (historic preservation planning) and served as the founding president of the Canadian Association of Heritage Professionals. He closed his consulting practice in 2010.
Hal now focuses on a dual career as author and teacher. He writes for popular, academic, and technical audiences, and teaches intensive courses at the University of Hong Kong (where he holds the rank of Honorary Professor) and the University of Victoria. His books include the new Heritage Planning: Principles and Process, and the highly praised Exploring Vancouver and A History of Canadian Architecture. Hal is a member of the Historic Sites and Monuments Board of Canada. He has served on the boards of many heritage organizations and on community heritage commissions. He received the B.C. Heritage Award in 2006, the Gabrielle Léger Medal for Lifetime Achievement in Heritage Conservation in 2009, and a Lifetime Achievement Award from the Canadian Association of Heritage Professionals in 2015. He is a member of the Order of Canada. A native of Montreal, Hal lives in Victoria with his wife, artist Linda Kalman.

Cornelius Holtorf Co-Investigator

https://heritage-futures.org/people/cornelius-holtorf/

Cornelius Holtorf




Co-Investigator


Cornelius Holtorf is Professor of Archaeology and holds a UNESCO Chair on Heritage Futures at Linnaeus University in Kalmar, Sweden. He also directs the Graduate School in Contract Archaeology (GRASCA) at his University. Having collaborated for many years with the Swedish Nuclear Fuel and Waste Management Company (SKB) and other major stakeholders in the nuclear waste sector, he is currently directing the project “Memory across Generations”. His research interests lie in contemporary archaeology, heritage theory and heritage futures. Cornelius was a Co-Investigator and led the Uncertainty theme of the Heritage Futures research programme.

2020. 3. 26.

19세기말 조선을 방문한 사람들


한국사 검색의 달인...ㅎㅎㅎ

국립문화재연구소
https://portal.nrich.go.kr/kor/index.do

디지털 장서각
http://jsg.aks.ac.kr/portal/
장서각 한국학자료센터
http://royal.aks.ac.kr/Default.aspx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자료실
https://www.unesco.or.kr/data/report/list/?s_cat=5

北漢管城將以下諸將官將校負役軍兵僧將校軍兵等實數及料布成冊

북한관성장이하제장관장교부역군병승장교군병등실수급요포성책(北漢管城將以下諸將官將校負役軍兵僧將校軍兵等實數及料布成冊)
저자 북한관성소(北漢管城所) ()
자료명(이칭) 北漢管城將以下諸將官將校負役軍兵僧將校軍兵等實數及料布所冊
저자(이칭) 北漢管城所(朝鮮)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879(고종 1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879(고종 16) 11월 북한산성의 管城將 이하 제 將官, 將校, 員役, 軍兵 등의 실제 수와 이들에게 지급하는 料布의 액수를 成冊해 놓은 자료이다.
표제는 北漢管城將以下諸將官將校負役軍兵僧將校軍兵等實數及料布成冊이다. 표지에 己卯十一月日이라고 묵서되어 있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卍字 문양이 있으며 주황 실로 오침안정을 한 線裝本으로, 서명은 붓으로 썼다. 不分卷 111이며,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板式四周雙邊, 上下向三葉花紋魚尾의 인찰공책지이며, 본문은 10行 字數不定의 필사본이다. 인장은 표지 이면에 정방형의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이 성책은 북한산성의 방어와 관리를 담당하는 管城所를 비롯하여 훈련도감 창고[訓倉], 금위영 창고[禁倉], 어영청 창고[御倉], 僧倉의 순으로 군관, 원역, 고직, 구종 등의 料布 액수를 기록하였다.
관성소에는 管城將 1원을 시작으로 把摠 1, 哨官 5, 別破陣哨官 1, 敎鍊官 4, 旗牌官 5, 訓長 1, 軍器監官 1, 守堞摠 2, 兵房軍官 1, 戶房軍官 1, 掌務軍官 1, 三宇內山監 3, 付料軍官 17, 哨官廳房直 1, 敎鍊官廳房直 1, 付料軍官廳房直 1, 京旗手 3, 驅從 1, 書員 1, 庫直 1인에 대한 每朔米을 차등 있게 적어 놓았다. 예컨대, 관성장의 매삭미는 4, 전은 165전인데 반해 관성소 구종 1명의 매삭미는 단지 8두로 책정해 놓았다. 이어 행궁의 庫直守直所, 別庫, 大廳直, 標下軍 등에 지급하는 每朔米·秋衣資, 그리고 행궁 소속 군사와 관리비용[風遮工米, 窓戶次錢]을 열거해 놓았다. 다음으로 훈창, 금창, 어창, 승창의 순으로 북한산성의 방어를 담당하는 각 군문 소속 군인들의 급료와 각 창의 관리 비용을 순서대로 적은 뒤 총액을 산출해 놓았다.
이 성책이 작성된 187911월 의정부에서 경리청을 무위소에 부속시키는 문제를 논의하면서 고종에게 별단을 작성해 올렸는데, 위의 성책은 이 별단과 관련이 있는 자료로 보인다. 별단을 살펴보면, 북한산성의 管城將 이하 장교, 원역, 군졸의 實數管城所, 三留營, 僧倉에 있는 물품, 錢穀을 무위소에 이속시키는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집필자 : 최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