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출판부에서 2016년에 출간한 형설기문에 보면 하권 10번째 항목에 팔비헌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산성 관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뜻밖의 책에서 북한산성 관성장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깜짝놀라고, 기쁜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번역문에 이간(李玕)으로 되어 있어서, 일단 관성장 이간이라는 인물에 대해 검색 시작,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차근차근 찾아보았다. 몇 명 검색에 걸림, 그러나 살았던 시기와 활동내용을 대조해보니 다 맞지 않았음. 한참을 삽질한 후, 이름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음. 이간이라니... 이간질이 바로 떠오름. 총융사 명단을 뒤지기 시작. 이우가 걸림. 아니 한자가 이리 비슷하여 실수한 것으로 추정됨. 이우. 이우였음. 된장. 피곤...
이우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리서치 시작. 삼도수군절도사를 지냈음. 실록에 검색에 좀 나오는데...ㅎㅎㅎ... 친인척에 뇌물공여 및 취업봐주기 등 몇건의 고발접수로 조사 당함. 탈탈 털었음. 여러변명으로 요행히 석방. 나중에 좀 더 찾아보겠음. 삽질 후 급피곤.
팔비헌은 진짜 기이하고 재밌음. 북한산과 북한산성을 안다면, 경리청과 총융청 그리고 파견부대 관성소를 안다면 더욱 이해가 빠름. 그리고 펀 함...ㅎㅎㅎ
‘여덟 개가 아닌 건물’의 현판을 단 건물
이우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파보기로, 일단 나중에...
형설기문 - 한밤에 깨어 옛일을 쓰다
이극성 저 / 장유승, 부유섭, 백승호 공역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2016년 11월 30일
이간 李玕 팔비헌 八非軒
이우(李玗)
螢雪記聞 은 李克誠(1721~1779)이 편찬한 筆記類의 저술로, 그 주 된 내용은 이극성의 선조와 관련있는 남인계 문인들에 대한 기록이 다.
편자 이극성은 초명이 존성(存誠), 자가 유일(幼一), 호는 고재(睾齋)라고도 불렸다. 태종(太宗)의 제1서자(庶子)인 경녕군(敬寧君) 이비(李裶)의 후손으로,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의 6대손이 된다. 이수광의 장자로 영의정을 지낸 분사(分沙) 이성구(李聖求), 승지를 지낸 혼천(混泉) 이동규(李同揆), 전라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회헌(悔軒) 이현기(李玄紀), 정언을 지낸 이한종(李漢宗)의 계자인 이계주(李啓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봉가의 종손(宗孫)으로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사위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계에서 특기할 것은 이극성의 계자 이윤하(李潤夏)가 권철신의 누이와 혼인하여 천주교 초기 교인들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으며, 1785년(정조 9)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에도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학징의(邪學徵義)』(불함문화사, 1977년 영인)에 실린 이윤하의 아들 이경도(李景陶) 공초 기록에 의하면, 이가환, 황사영과 혈당(血黨)을 맺어 상종하였으며, 누이인 이순이(李順伊)가 유항검(柳恒儉)의 자부(子婦)가 되어 ‘사학을 믿는 무리의 소굴[邪徒之窩窟]’이라는 명목으로 신유박해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둘째아들 이경언(李景彦)은 역시 1827년(순조 27) 천주교 박해로 옥사하였다. 그의 편저서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이유가 이런 가화(家禍)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는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758년(영조 34) 참봉(參奉) , 이후 연기현감(燕岐縣監), 1760년(영조 36) 사행감(司宰監) 봉사(奉事), 1763년(영조 39) 한성부(漢城府) 판관(判官)에 제수되었으며, 1770년(영조 46) 위솔(衛率) 등을 역임하였다. 이용휴(李用休), 채제공(蔡濟恭), 목만중(睦萬中), 이헌경(李獻慶), 안정복(安鼎福) 등 당대 남인 내의 주요 인물들과 교분을 나누고, 저술이 완성되면 이들에게 서발 등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문한가의 정통을 계승하여 많은 편서와 저술을 남겼다. 몇 가지로 편저술의 성격을 나눠보면, 사학(史學)에 밝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선대(先代)의 문집과 가사(家史)를 정리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성구의 『분사유고(分沙遺稿)』 , 이동규의 『혼천집(混泉集)』, 이현기의 『회헌잡저(悔軒雜著)』, 이영주(李永冑)의 『탄은집(誕隱集)』, 이계주의 『온재서법(溫齋書法)』, 『경원록(景遠錄)』‚ 『오절순란록(五節殉難錄)』 등은 집안의 문집과 일사를 따로 정리한 편서거나 저작이다. 둘째, 야담을 정리한 저술을 남겨 놓아, 본 해제 대상인 『사과록(四科錄)』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인물들의 일사와 시화 등을 정리한 『형설기문(螢雪記聞)』 등이 있다. 셋째, 명대의 역사를 정리한 전문 서적을 저술하였다.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체례를 본받아 294년간의 명대 역사를 강목(綱目)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포폄을 가하여 『명사총강(明史總綱)』을 만들었다.
구성 및 내용
본서는 조선 초부터 저자 당대 이전 인물에 한정하여 일문(逸聞), 일사(逸事) 등을 여러 문헌에서 발췌하여 『논어(論語)』의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네 가지 학과, 즉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으로 나누어 정리한 필기이다. 이용휴의 「제사과록발(題四科錄跋)」(『탄만집(??集)』)에서 이름은 공문사과에서 빌린 것이지만, 그 뜻은 주희의 『명신록(名臣錄)』에 실린 인물의 언행(言行)이나 『소학(小學)』의 「가언(嘉言)」, 「선행(善行)」 등에 실린 언행을 가져온 것이라 하였다. 저자 자신이 공문사과의 각 항목에 다시 하위 항목을 설정하여 「덕행편(德行篇)」은 ‘선행(善行)’, 「언어편(言語篇)」은 ‘격어(格語)’와 ‘명언(名言)’, 「정사편(政事篇)」은 ‘위정(爲政)’, ‘처사(處事)’, ‘논사(論事)’, 「문학편(文學篇)」은 ‘학술(學術)’과 ‘문사(文辭)’로 분류하고 있다. 본서에는 각 기사마다 원권(圓圈)을 사용하여 내용을 나누고, 주필(朱筆)로 해당 기사에 해당하는 인물에 방선(傍線)이 처져 있다. 기사의 끝에는 인용서목을 소주(小註)로 부기하였다. 간혹 항목의 해당 일화가 이동이 필요한 곳에는 교정 사항이 두주(頭註)로 적혀있다.
여기 실린 내용은 문집(文集), 필기(筆記), 시화(詩話), 여지(輿地), 실기(實記), 연보(年譜) 등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한 것이다. 문집은 조광조(趙光祖)의 『정암집(靜庵集)』, 권벌(權橃)의 『충재집(冲齋集)』,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이언적(李彦迪)의 『회재집(晦齋集)』 등 80여종의 문집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정리한 집안 문집에서 발췌한 부분이 많으며, 남인가 문집들이 자주 보인다. 문집의 내용은 묘도문자에서 인용한 것이 많은데, 이때 약간의 변개(變改)가 있다.
필기(筆記), 시화(詩話), 여지(輿地), 실기(實記), 연보(年譜) 등의 저작으로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동인시화(東人詩話)』․『태평한화(太平閑話)』, 이륙(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秋江冷話)』, 조신(曺伸)의 『소문쇄록(謏聞鎖錄)』,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김정국(金正國)의 『사재척언(思齋摭言)』,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심수경(沈守慶)의 『견한록(遣閑錄)』, 정개청(鄭介淸)의 『우득록(愚得錄)』, 윤국형의 『문소만필(聞韶漫錄)』,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경연일기(經筵日記)』, 이제신(李濟臣)의 『후청쇄어(鯸鯖瑣語)』․『사재록(思齋錄)』, 허엽(許曄)의 『전언왕행록(前言往行錄)』, 허봉(許篈)의 『해동야언(海東埜言)』, 이정형(李廷馨)의 『동각잡기(東閣雜記)』․『황토기사(黃兎記事)』,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五山說林)』,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신흠(申欽)의 『청창연담(晴窓軟談)』,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허균(許筠)의 『파인지소록(巴人識小錄)』, 임보신(任輔臣)의 『포초잡록(圃樵雜錄)』, 이산해(李山海)의 『아성잡설(鵞城雜說)』, 윤의립(尹毅立)의 『야언통재(埜言通載)』,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잡기(寄齋雜記)』, 이기(李墍)의 『송와잡기(松窩雜記)』, 이덕형(李德泂)의 『죽창한화(竹窓閑話)』, 김시양(金時讓)의 『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부계기문(涪溪記聞)』․『자해필담(紫海筆談)』, 이식(李植)의 『택당잡저(澤堂雜著)』, 강백년(姜栢年)의 『한계만록(閑溪漫錄)』, 김득신(金得臣)의 『종남총지(終南叢志)』, 윤순거(尹舜擧)의 『노릉지(魯陵志)』, 정재륜(鄭載崙)의 『견한록(遣閑錄)』․『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 이성령(李星齡)의 『춘파당일월록(春坡堂日月錄)』, 정태제(鄭泰齊)의 『국당배어(菊堂徘語)』, 양경우(梁慶遇)의 『제호시화(霽湖詩話)』, 남용익(南龍翼)의 『호곡시화(壺谷詩話)』, 임경(任璟)의 『현호쇄담(玄湖瑣譚)』,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유광익(柳光翼)의 『楓岩輯話』, 정시걸(丁時傑)의 『정씨술선록(丁氏述先錄)』, 김육(金堉)의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이현기(李玄紀)의 『회옹만필(悔翁漫筆)』, 이희겸(李喜謙)의 『청야만집(靑野謾輯)』,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국조보감(國朝寶鑑)』, 『소대수언(昭代粹言)』, 『감람록(戡亂錄)』, 『야사(野史)』,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 『창석이문록(蒼石異聞錄)』, 『사우언행록(師友言行錄)』, 『기묘록(己卯錄)』, 『경현록(景賢錄)』, 『충렬록(忠烈錄)』, 『금남사적(錦南事蹟)』, 『정무공실기(貞武公實記)』, 『만록(漫錄)』, 『진양세덕록(晉陽世德篇)』, 『상산지(商山志)』, 『동국유선록(東國儒先錄)』, 『관서문잡록(關西問答錄)』, 『남씨가승(南氏家乘)』, 『문견록(聞見錄)』, 『해동습유록(海東拾遺錄)』, 『축수편(逐睡篇)』, 『서애연보(西厓年譜)』, 『동춘당연보(同春堂年譜)』, 『수필(隨筆)』, 『여지승람(輿地勝覽)』, 「효녕대군묘지(孝寧大君墓誌)」, 「이공행장(李公行狀)」(李后定), 이극성의 『경원록』․『형설기문』 등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저자 자신의 다른 저술인 『경원록』․『형설기문』 등에서 인용한 빈도가 높다.
본서의 편차는 다음과 같다.
1책:「덕행편(德行篇)」, 선행(善行)(권1).
2책:「덕행편(德行篇)」, 선행(善行)(권2).
3책:「언어편(言語篇)」, 격어(格語)(권3).
4책:「언어편(言語篇)」, 명언(名言)(권4). 「정사편(政事篇)」, 위정(爲政)(권5), 처사(處事)(권6).
5책:「정사편(政事篇)」, 논사(論事)(권7).
6책:「문학편(文學篇)」, 학술(學術)(권8), 문사(文辭)(권9 上․下).
「덕행편(德行篇)」, 선행(善行)(권1, 230조)에는 충효에 관련된 내용으로 태조조의 박순(朴淳), 허후(許詡),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성승(成勝), 이개(李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등의 일화가 실려 있으며, 선행(善行)(권2, 156조)에는 인물의 우정, 염결(廉潔), 조신(操身) 등의 내용으로 유경집(柳景緝), 김득신(金得臣), 이수광, 이석규(李碩揆)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언어편(言語篇)」, 격어(格語)(125조)에는 말을 사용하는 품격과 훌륭한 말 등의 내용으로 황희(黃喜), 김숙자(金叔滋), 남재(南在), 이완(李浣), 조광조(趙光祖), 유언겸(兪彦謙), 김성일(金誠一), 이원익(李元翼), 이황(李滉), 조경(趙絅)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언어편(言語篇)」, 명언(名言)(30조)에는 인물의 언어생활에서 명쾌하고 재치 있는 소화(笑話)를 비롯하여 능변(能辯)을 내용으로 어득강(魚得江), 신광한(申光漢), 박계현(朴啓賢), 이홍남(李洪男), 이각(李覺), 성호선(成好善), 정도전(鄭道傳), 이자견(李自堅), 윤방(尹昉)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정사편(政事篇)」, 위정(爲政)(103조)에는 인물의 관직 생활 치적 등 모범적인 정사 사례를 내용으로 어효첨(魚孝瞻), 남지(南智), 송천희(宋千喜)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처사(處事)(91조)에는 인물의 일상과 관직 생활에서 일처리와 관련된 내용으로 하위지(河緯地), 조광조(趙光祖), 정충신(鄭忠信)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논사(論事)(108조)에는 인물의 상소나 일처리에 대한 논의 정당성을 다룬 내용으로 이래(李來), 유정현(柳廷顯), 최부(崔溥)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문학편(文學篇)」, 학술(學術)(34조)에는 인물의 학술적 성취와 공력에 관련된 내용으로 김숙자, 박영(朴英), 김정(金淨), 조식(曹植) 등의 일화가 실려 있다. 문사(文辭)(권9, 上, 38조)에는 문학에 대한 공력에 관련된 일화를 중심으로 김수온(金守溫), 권벌(權橃), 이산보(李山甫) 등의 일화가 실려 있고, 문사(文辭)(권9, 下, 130조)에는 김시습(金時習), 채수(蔡壽) 등의 인물의 시화가 실려 있다.
서지적 가치
현전 『고암신편사과록(睾庵新編四科錄)』은 해제 대상인 동양문고 이외에 국민대학교 성곡도서관(2책, 결본), 충남대학교 학산문고(1책)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민대본은 천(天: 권1-2)․지(地: 권3-6)․인(人: 권7-8) 3책으로 되어 있던 것이 현재 지(地)․인(人) 2책만 남아 있다. 권수제가 ‘사과록(四科錄)’으로 되어 있으나, 권7에는 ‘고암신편사과록(睾庵新編四科錄)’으로 되어 있다. ‘성산세가(星山世家)’라는 장서인(藏書印)이 찍혀있다. 남아있는 내용을 보면, 해제본과 동일본이며, 정사(淨寫)되어 있다. 충남대본은 권수제가 ‘사과록(四科錄)’으로 되어 있으며 「덕행편(德行篇)」의 일부 내용이 초록되어 있다. 따라서 해제 대상인 동양문고본은 전편이 남아 있고, 정사되어 있는 선본(善本)으로 추정된다. 이 책에는 ‘경언(瓊彦)’ ‘김휴(金畦)’ 등의 장서인이 찍혀있다.
내용적 가치
본서의 가치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서는 단순히 저자의 문견(聞見) 기록을 정리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체계적으로 유교적 이념에 맞춰 정리한 필기 저작이다. 중국남조시대송나라 때 유의경(劉義慶)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앞부분에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의 공문사과를 편목으로 설정하고, 인물의 일화를 소개하여 후대 저술에 영향을 미쳤으나, 본서는 이러한 내용을 철저히 조선에서 찾고 있다.
둘째, 현전하지 않는 다른 저술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문집, 필기류 등의 다양한 저술들을 인용하여 정리한 책이면서도 다른 곳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내용이 있어 특기할 만하다. 특히, 저자의 다른 저술 『경원록(景遠錄)』, 『형설기문(螢雪記聞)』 등에서 인용된 것이 많은데, 현전 여부가 확실치 않은 『경원록』의 일부 내용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타 저술의 일문(逸文)을 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원록』은 지봉가의 일화를 정리한 것으로 국재(菊齋) 이희검(李希儉), 이수광, 이성구,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 이상규(李尙揆), 혼천(混泉) 이동규(李同揆), 퇴촌(退村) 이당규(李堂揆), 이석규(李碩揆), 회헌(悔軒) 이현기(李玄紀), 이현수(李玄綏), 이현치(李玄緻), 유재(游齋) 이현석(李玄錫), 경연당(景淵堂) 이현조(李玄祚), 나은(懶隱) 이현량(李玄亮), 졸은(拙隱) 이한보(李漢輔), 하정(芐亭) 이덕주(李悳冑), 의호(義湖) 이서주(李瑞冑), 기원(杞園) 이혜주(李惠冑), 하포(芐圃) 이헌주(李憲冑) 등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특히 「덕행편(德行篇)」과 「문학편(文學篇)」에 집중되어 있는 지봉가의 일화는 덕행과 문한으로 이름난 집안의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셋째, 문사(文辭)에는 저자 가문의 문한가적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시화를 대거 수록하는 한편, 남인(南人) 시인들의 시화(詩話)가 실려 있다. 특히 인조 이후 남인 시단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이서우(李瑞雨), 채팽윤(蔡彭胤), 오상렴(吳尙濂),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 등이 소개된 것은 남인 시화적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노론의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등의 인물이 소개되어 있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참고문헌
장유승, 「李克誠의 『螢雪記聞』 연구」, 『성호학보』 4, 성호학회, 2007.
집필자 : 부유섭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