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은 죽어 없어지리라.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리라. 생명을 주관하는 자는 암흑의 혹성 저 너머로 마지막 태양의 마지막 빛까지도 불사르리라. 오직 나의 고통만이 더욱 가혹하다 나는 서 있다, 불속에 휘감긴 채로, 상상도 못할 사랑의 끌 수 없는 커다란 불길 위에.' 탄환은 심장을 동경한다! Mayakovskii, Vladimir V.;Маяковский, Владимир,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2020. 1. 25.
2020. 1. 24.
2020년 해외 기획전시 지원 공모 안내
2020년 「미술품 해외시장 개척 지원」 해외 기획전시 지원(FKAA) 공모 안내
ㅇ 한국작가의 전시를 개최하는 해외기관이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 지원신청서 제출
ㅇ 제출기간 : 2019. 12. 3.(화) ~ 2020. 2. 25.(화) 23:59 KST
※ 한국 시간 기준이며, 제출기간 이후에는 지원신청서 접수 불가
ㅇ 제출방법 : 이메일 접수 (art.abroad@gokams.or.kr)
2020. 1. 23.
제26차 유럽고고학회
위대하신 김태식 기자님 홈피에서 퍼 왔어요...
역사문화라이브러리 HISTORYLIBRARY
26th EAA Annual Meeting in Budapest, Hungary, 26-30 August 2020
EAA, the European Association of Archaeologists
올해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제26차 유럽고고학회가 초록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학회는 8월 26-30일 열리며 초록 모집 기간은 2월 13일 까지입니다.
유럽 고고학회 올해 공식 홈페이지는 https://www.e-a-a.org/EAA2020
초록 투고는 https://submissions.e-a-a.org/eaa2020/
학회 초록 투고 관련 주제는 https://www.e-a-a.org/EAA2020/Programme.aspx?WebsiteKey=4245c0d1-9c0e-4a58-bfa2-906885ad5f28&hkey=e2646dc0-ed23-404c-ad20-24129c9e69c3&Program=1#Program
학회 프로그램은 https://www.e-a-a.org/EAA2020/Programme.aspx?WebsiteKey=4245c0d1-9c0e-4a58-bfa2-906885ad5f28&hkey=e2646dc0-ed23-404c-ad20-24129c9e69c3&Program=2#Program
현재까지 채택된 Session은 https://www.e-a-a.org/EAA2020/Programme.aspx?WebsiteKey=4245c0d1-9c0e-4a58-bfa2-906885ad5f28&hkey=e2646dc0-ed23-404c-ad20-24129c9e69c3&Program=3#Program
입니다.
우리 연구실이 참여해봤던 고고학 관련 학회 중에서는 가장 수준이 높고 규모가 큰 학회라고 생각합니다. 세계고고학대회보다 더 큰듯. 참여하시면 얻으시는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추..
2020. 1. 20.
북한산성, 탕춘대성(서성, 北自香林, 南抵佛巖)
영조실록 121권, 영조 49년 10월 27일 壬子 2번째기사 1773년 청 건륭(乾隆) 38년
행 부사직 구선행이 상소하여 북한산성의 방비 등에 대해 아뢰다
○行副司直具善行上疏, 略曰:
在昔己亥, 固根本之聖敎, 欲爲修築北漢舊城, 又塞造紙署洞口, 以爲臨難移御之所, 睿智神略, 慨然於都城先潰之患。 而辛卯繼述之聖斷, 卓越千古, 始築北城, 爲固守根本之計, 及至丁卯我聖上爰定大計, 群策畢收, 守都綸音, 如金石之堅, 四時之信。 亦嘗有敎曰, 至於摠戎廳, 其責尤重。 兵法曰, 先據北山者勝, 北漢卽都城之咽喉也。 敵若據此, 何以措手? 故昔年築山城設水門, 而近者摠戎使兼畿閫, 處蕩春臺者, 蓋爲此也。 又令一枝軍, 遮遏沙麓之間, 敵非徒不敢犯水門, 亦不踰沙峴矣。 惟彼北城, 與鍊臺爲國都之後關, 天作金湯, 擁圍於神京之背。 四面險截, 易守難攻, 又非南漢之可比。 而今人不能深究乎主客攻守之利害, 又眩於前後去邠之已事, 莫敢主張於堅守之論。 噫! 摠戎移設鍊臺之後, 先臣殫竭心思, 畢築西城, 又欲防遏東邊山麓。 而至於兄弟峰以下, 則久通樵路, 以致沙土流下, 崖岸漸圮, 從其外面, 添補新土, 被莎植木, 接連於曲城下, 仍成山柵, 則斗絶懸崖, 誰敢容易攀登? 況且西城逶迤, 北自香林, 南抵佛巖, 便成重金襲湯, 漢北門路, 乍開石川, 巴字屈曲, 左右擁逼, 騎難成列, 又無別路之可入, 亦何敢輕騎跳踉於兩山頭矢石之下哉? 此城一固, 寧容暴客之深入乎? 許多般火器, 何者無用, 而造化循環砲一窩蜂箭, 俱是萬人敵也。 臣造此數器, 果驗神機之無出其右。"
答曰: "今覽卿章, 卿誠可嘉。 予欲問之, 明日診筵, 與右相入侍。“
행 부사직(行副司直) 구선행(具善行)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예전 기해년 에 ‘근본을 튼튼하게 하라.’는 성교(聖敎)는 북한산(北漢山) 옛 성(城)을 수축하고 또 조지서(造紙署) 동구(洞口)를 막아서 난리가 나면 이어(移御)할 장소로 삼으려고 하신 것이니, 〈이러한〉 예지(睿智)와 신략(神略) 은 도성(都城)이 먼저 허물어지는 근심을 개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묘년 에 계술(繼述)한 성단(聖斷)은 천고(千古)에 우뚝하여 비로소 북한산성을 쌓아 근본을 굳게 지키는 계책을 삼았으며, 정묘년에 이르러 우리 성상께서는 큰 계책을 정하고 뭇 사람의 꾀를 모두 거두어서 도성을 지키자는 윤음(綸音)이 금석(金石)처럼 견고하고 사시(四時)처럼 미더웠습니다. 또한 일찍이 하교에 이르기를, ‘총융청(摠戎廳)에 이르러서는 그 책임이 더욱 중하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북산(北山)을 먼저 점거하는 자는 이긴다.」고 하였으니, 북한산은 바로 도성의 요충(要衝)이다. 적이 만약 이를 점거하면 어떻게 손을 쓰겠는가? 그러므로 옛날 여기에 산성(山城)을 쌓고 수문(水門)을 설치하였으며, 근래에는 총융사(摠戎使)가 경기 병사(京畿兵使)를 겸하여 탕춘대(蕩春臺)에 있는 것은 대저 이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일지군(一枝軍)으로 하여금 사록(沙麓) 사이를 막으면, 적이 감히 수문을 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현(沙峴)도 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저 북한산성은 연병대(鍊兵臺)와 더불어 국도(國都)의 후관(後關)이 되며, 하늘이 만든 금성탕지(金城湯池)로서 도성(都城)의 등[背]을 옹위(擁圍)하고 있습니다. 사면(四面)이 험하고 높아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우니, 또한 남한산성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주객(主客)과 공수(攻守)의 이해(利害)를 깊이 연구하지 못하고 또 전후(前後)에 도성을 버리고 파천(播遷)한 지난 일에 현혹되어, 도성을 굳게 지키자는 논의를 감히 주장하지 못합니다. 아! 총융청을 연병대로 옮긴 뒤에 선신(先臣) 이 마음을 다하여 서성(西城)의 축조를 마치고, 또 동쪽 산록(山麓)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형제봉(兄第峯) 아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나무꾼이 다니던 길을 통해 모래흙이 흘러내려서 언덕이 점점 허물어지게 되었으니, 그 외면(外面)에 새로이 흙을 보충하여 잔디를 입히고 나무를 심어서 곡성(曲城) 밑에까지 연접하게 하고 이어서 산책(山柵)을 만든다면, 높이 솟은 절벽을 누가 감히 쉽게 올라오겠습니까? 더욱이 서성(西城)은 꾸불꾸불한 모양으로 북쪽은 향림(香林)으로부터 남쪽은 불암(佛巖)에 이르기까지, 거듭 쌓인 금성탕지(金城湯池)를 이루었으며, 한북문(漢北門) 길은 약간 석천(石川)이 열렸으나 파자(巴字)로 굴곡(屈曲)하여 좌우가 막히고 좁아서 말을 타고 열(列)을 이루기 어려우며, 또 다른 길로는 들어갈 수가 없으니 또한 어찌 감히 경기(輕騎)가 두 산머리의 화살과 돌 밑에 날뛸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 성을 한번 견고하게 한다면 어찌 적병(賊兵)이 깊이 침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허다한 화기(火器)가 어느 것이나 쓸모가 없지만, 조화 순환포(造化循環砲)와 일와 봉전(一窩蜂箭)은 모두 만인(萬人)을 대적할 것입니다. 신이 이 몇 가지 병기(兵器)를 만들었는데, 과연 신기(神機)가 이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징험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이제 경의 글을 보니, 경의 정성이 가상하다. 내가 묻고자 하는 일이 있으니 내일 진찰하는 자리에 우의정과 같이 입시(入侍)하라."
하였다.
Mechtild Rössler DIRECTOR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World Heritage Centre (CLT/WHC)
Mechtild Rössler
DIRECTOR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World Heritage Centre (CLT/WHC)
Email: M.Rossler@unesco.org
Tel: +33145681891
Mechtild Rössler is the Director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An expert in both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and the history of planning, Ms Rössler was appointed in 2013 to the post of Deputy Director of the World Heritage Centre. Since 2014, as Deputy Director of the Division for Heritage, her tasks included overseeing teams of the Cultural Heritage Treaty Section in charge of 3 international Conventions: The 1954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Cultural Property in the Event of Armed Conflict, the 1970 Conven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Import, Ex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 and the 2001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Underwater Cultural Heritage as well as Museums. She also managed the team of the History, Memory and Dialogue Section (HMD) dealing with the Slave Route, Silk Road Platform and the UNESCO Sharjah Prize for Arab Culture. In 2015 she became the Director of the Division for Heritage and the Director of the World Heritage Centre.
Dr. Mechtild Rössler has a degree in cultural geography from Freiburg University (Germany) and a Ph.D. from the Faculty for Earth Sciences, University of Hamburg (Germany) in 1988. She joined the CNRS at the Research Centre of the “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Paris, France) in 1989 and worked in 1990/91 as a visiting scholar on geography, area research and spatial planning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USA, in the Department of Geography. In 1991 she started working at UNESCO Headquarters in Paris in the Division for Ecological Sciences and transferred in 1992 to the newly created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She held different positions including as Programme Specialist for Natural Heritage and cultural landscapes (1993-2001), Chief of Europe and North America (2001-2010), Chief of the Policy and Statutory Meeting Section (2010-2013) and Deputy Director. She has published and co-authored 13 books and more than 100 articles, including “Many voices, one vision: the early history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together with Christina Cameron, 2013).
2020. 1. 18.
軍營謄錄
軍營謄錄
http://visualjoseon.aks.ac.kr/etc/gy_refer?type=page01
http://visualjoseon.aks.ac.kr/gy/item?#node?itemId=gy&gubun=gunYoung&depth=2&upPath=ALL&dataId=G002%2BJSG%2BKSM-WR.1767.1111-20161130.K2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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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의 오군영에서 작성한 업무일지.
1593년부터 1882년까지 300여년간 기록되었으며 총 689책이다.
규장각과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훈련도감이 창설된 1593년부터 별기군 창설 이후 폐지된 1882년까지 30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된 조선 시대 군영들의 일일 업무일지로 당시 군 조직과 활동상은 물론 병사들의 생활 모습, 주변의 국제, 군사 정세, 군인들이 임금에게 호소한 내용 등이 담겨 있으며, 300여년 동안의 우리나라 사회상과 경제상 등 시대 전반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병영 기록을 이토록 수백여년의 장기간에 걸쳐 작성하고 온전하게 보존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조선의 군영등록이 유일하다.
훈련도감의 전용 일지인 훈국등록 108책을 포함한 총 569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도서관 장서각에, 훈국등록 9책을 포함한 총 120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집 없는 병사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준 내용, 조선 시대 군인들의 생계 활동, 표류해 조선에 정착한 네덜란드인 박연과 헨드릭 하멜의 훈련도감 근무 기록, 노비 출신으로 훈련도감 무관이 돼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했던 안사민이 원래 주인의 소유권 주장 때문에 다시 노비로 전락할 뻔한 사연 등등 온갖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3. 원문DB
현재 장서각 기록유산 DB에서 장서각 소장본 군영등록 569책 중 일부분을 올려놓았다.
1. 1615년 ~ 1617년 훈국등록(訓局謄錄)
2. 1623년 ~ 1867년 금위영사례(禁衛營事例)
3. 1623년 ~ 1867년 금위영사례(禁衛營事例)
4. 1623년 ~ 1874년 금위영사례초(禁衛營事例草)
5. 1624년 ~ 1650년 어영청구식례(御營廳舊式例)
6. 1624년 ~ 1660년 어영청도등록(御營廳都謄錄)
6. 1624년 ~ 1771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7. 1624년 ~ 1811년 어영청사례(御營廳事例)
8. 1624년 ~ 1866년 어영청초등록(御營廳抄謄錄)
9. 1624년 ~ 1880년 어영집사청사례통고(御營執事廳事例通攷)
10. 1625년 ~ 1884년 어영청등록(御營廳謄錄)
11. 1626년 ~ 1627년 훈국등록(訓局謄錄)
12. 1628년 ~ 1881년 훈국등록(訓局謄錄)
13. 1645년 ~ 1738년 어영청습진급착호등록(御營廳習陣及捉虎謄錄)
14. 1648년 ~ 1776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15. 1652년 ~ 1881년 어영청거동등록(御營廳擧動謄錄)
16. 1660년 ~ 1806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17. 1682년 ~ 1739년 금위영도등록(禁衛營都謄錄)
18. 1682년 ~ 1786년 금위영초등록(禁衛營抄謄錄)
19. 1682년 ~ 1844년 금위영초록(禁衛營抄錄)
20. 1682년 ~ 1883년 금위영등록(禁衛營謄錄)
21. 1683년 ~ 1727년 금위영도성개축등록(禁衛營都城改築謄錄)
22. 1684년 ~ 1709년 어영청도등록(御營廳都謄錄)
23. 1689년 ~ 1698년 금위영겸파총등록(禁衛營兼把總謄錄)
24. 1710년 ~ 1834년 훈국등초(訓局謄鈔)
25. 1721년 ~ 1824년 훈국집사청등록(訓局執事廳謄錄)
26. 1721년 ~ 1872년 금위영포폄등록(禁衛營褒貶謄錄)
27. 1725년 ~ 1771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28. 1725년 ~ 1858년 총융청등록(摠戎廳謄錄)
29. 1732년 ~ 1774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30. 1736년 ~ 1883년 어영청서총대등록(御營廳瑞蔥臺謄錄)
31. 1747년 ~ 1867년 어영청중순등록(御營廳中旬謄錄)
32. 1748년 ~ 1807년 어영청영종진등록(御營廳永宗鎭謄錄)
33. 1764년 훈국사례촬요(訓局事例撮要)
34. 1765년 ~ 1775년 훈국사례촬요(訓局事例撮要)
35. 1765년 어영청영종방영무사등매년시사정식절목책(御營廳永宗防營武士等每年試射定式節目冊)
36. 1767년 ~ 1866년 금위영거동등록(禁衛營擧動謄錄)
37. 1777년 ~ 1881년 금위영서총대등록(禁衛營瑞蔥臺謄錄)
38. 1785년 ~ 1800년 장용영고사(壯勇營故事)
39. 1793년 ~ 1867년 금위영요람(禁衛營要覽)
40. 1793년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
41. 1795년 ~ 1881년 어영청전령등록(御營廳傳令謄錄)
42. 1801년 ~ 1834년 훈국등록(訓局謄錄)
43. 1804년 ~ 1866년 어영청습진탈등록(御營廳習陣頉謄錄)
44. 1811년 ~ 1813년 호위청등록(扈衛廳謄錄)
45. 1816년 ~ 1856년 어영청감번등록(御營廳減番謄錄)
46. 1820년 훈국총요(訓局總要)
47. 1822년 ~ 1855년 금위영내관등록(禁衛營來關謄錄)
48. 1824년 ~ 1841년 총융청행행등록(摠戎廳幸行謄錄)
49. 1834년 ~ 1884년 어영청성역등록(御營廳城役謄錄)
50. 1846년 ~ 1849년 총위영습조홀기(總衛營習操笏記)
51. 1846년 ~ 1849년 총위영습조홀기(總衛營習操笏記)
52. 1847년 총위영사례(總衛營事例)
53. 1860년 ~ 1884년 금위영전좌등록(禁衛營殿座謄錄)
54. 1864년 ~ 1895년 훈국총요(訓局總要)
55. 1866년 ~ 1883년 어영청습진등록(御營廳習陣謄錄)
56. 1866년 순무영등록(巡撫營謄錄)
57. 1867년 ~ 1882년 금위영습진탈등록(禁衛營習陣頉謄錄)
58. 1868년 어영청식례(御營廳式例)
59. 1870년 ~ 1873년 금위영지출부(禁衛營支出簿)
60. 1872년~ 1884년 어영청포폄등록(御營廳褒貶謄錄)
61. 1874년 ~ 1875년 금위영소관영선비지출부(禁衛營所管營繕費支出簿)
62. 1874년 ~ 1882년 지구관청헌일기(知彀官廳憲日記)
63. 1874년 지구관청헌(知彀官廳憲)
64. 1878년 ~ 1880년 어영청관문초책(御營廳關文草冊)
65. 1882년 친군영절목(親軍營節目)
66. 1884년 ~ 1888년 친군별영등록(親軍別營謄錄)
67. 1890년 ~ 1892년 총어영등록(總禦營謄錄)
68. 금위영군색삭하어린(禁衛營軍色朔下魚鱗)
69. 장용위한산청천성책(壯勇衛閑散廳薦成冊)
70. 장용청절목초(壯勇廳節目抄)
71. 총융청사례(摠戎廳事例)
규장각 소장본 120책과 해외유출본 江界郡各面郡令謄錄, 江界郡報告謄錄, 江界郡府令謄錄, 江界府度支果謄錄, 江界府會計果文報謄錄, 京各部訓令謄錄, 京各司報告及各郡府令謄錄, 京畿謄錄, 京司訓令謄錄, 關北吉州防禦營民訴謄錄, 關西慰諭使謄錄, 大內修理謄錄冊, 謄錄, 貿紬契謄錄冊, 貿紬契傳掌謄錄, 白絲契傳掌謄錄, 別出次知盟文謄錄, 報告謄錄, 報告訓令謄錄, 生殖契傳掌謄錄, 宣醞謄錄, 市民謄錄, 預先所傳掌謄錄, 倭單所傳掌謄錄, 造備契傳掌謄錄, 火災時蕩減謄錄冊, 訓令謄錄, 檢題謄錄冊 , 敎書謄錄, 謄錄攷出, 刑曹謄錄抄, 湖南檢題謄錄 등은 웹DB 계획이 없다.
4. 기타[편집]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는 군영등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장서각에서는 2014년 11월 20일에 군영등록 세미나를 열었다. # 조선 시대 기록 자료로서 군영등록이 지닌 위상을 알아보고 훈국등록에 실린 민원 관련 자료인 상언(上言)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상을 조명한 후, 조선 시대 300여년 동안 중앙 군대와 군인에 관한 콘텐츠의 원천이 많아 스토리텔링 소재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며 앞으로 번역을 통한 콘텐츠 개발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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