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또 어디로 가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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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죽어 없어지리라.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리라. 생명을 주관하는 자는 암흑의 혹성 저 너머로 마지막 태양의 마지막 빛까지도 불사르리라. 오직 나의 고통만이 더욱 가혹하다 나는 서 있다, 불속에 휘감긴 채로, 상상도 못할 사랑의 끌 수 없는 커다란 불길 위에.' 탄환은 심장을 동경한다! Mayakovskii, Vladimir V.;Маяковский, Владимир,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2012. 2. 21.
2012. 2. 9.
감리교 원로 조화순 목사님 연락처를 찾습니다. 사연인즉, 지난 대보름날 집에 갔다가 막내 이모를 봤는데, 난데없이 조화순 목사님 보고싶다, 만나게 해다오, 연락처 좀 알아봐줘, 그럽디다. 그야 어렵지 않쥐. 근데 왜?
우리 이모는 '공순이'였습니다. 옛날 얘기 잘 안하더니, 엊그제는 조화순 목사님과의 인연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꼭 한번 보고 싶다더군요. 말인 즉슨, 이모와 조화순 목사는 70년대 인천에서 만났습니다. 만난 정도가 아니라 같이 살았더군요. 조화순 목사님이 산업선교 할 때 작은 골방에서 조 목사님하고 밥해서 같이 먹고, 빨래 해드리고... 그랬대요. 이모는 그때 한창 꽃다운 나이, 스무 살 무렵 일입니다. 그 골방 앞에는 늘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늘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했지만, 조 목사님의 인간미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 뒤로 이모도 야학에 다니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섰답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 노회찬 그리고 그의 마누라^^ 지현이(?), 김근태 마누라 재근이, 야학 선생이었던 꽃미남 손학규... 정말 쟁쟁한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더군요. 그 순간 나는, "아쒸~! 우리 집에도 노동해방투사가 있었는데, 나도 노동운동 했으면서 왜 이모의 전력을 이제 알았지?"였습니다. 우리 이모 대단했더군요. 명동YMCA 위장결혼사건, YH노동자 위장취업사건, 동일방직 투쟁 등 쟁쟁한 사건을 두루 거친 백전노장이었어요. 헐~! 진작 알았으면, 노동운동할 때 노회찬 소개받는 건데...쩝~^^
그런데, 지금 이모가 아픕니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어요. 박박 민 채로...ㅠㅠ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끝낸 상태입니다. 다행히 삶에는 지장이 없지만, 마음 한쪽이 무너졌나 봅니다. 조 목사님을 찾는 눈빛에 갈급, 절박함이 보이더군요. 조 목사님은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하면서, 옛날, 처녀 때처럼 다시 조 목사님하고 같이 살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옆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이모의 이름은 손복숙입니다.
우리 이모는 '공순이'였습니다. 옛날 얘기 잘 안하더니, 엊그제는 조화순 목사님과의 인연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꼭 한번 보고 싶다더군요. 말인 즉슨, 이모와 조화순 목사는 70년대 인천에서 만났습니다. 만난 정도가 아니라 같이 살았더군요. 조화순 목사님이 산업선교 할 때 작은 골방에서 조 목사님하고 밥해서 같이 먹고, 빨래 해드리고... 그랬대요. 이모는 그때 한창 꽃다운 나이, 스무 살 무렵 일입니다. 그 골방 앞에는 늘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늘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했지만, 조 목사님의 인간미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 뒤로 이모도 야학에 다니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섰답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 노회찬 그리고 그의 마누라^^ 지현이(?), 김근태 마누라 재근이, 야학 선생이었던 꽃미남 손학규... 정말 쟁쟁한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더군요. 그 순간 나는, "아쒸~! 우리 집에도 노동해방투사가 있었는데, 나도 노동운동 했으면서 왜 이모의 전력을 이제 알았지?"였습니다. 우리 이모 대단했더군요. 명동YMCA 위장결혼사건, YH노동자 위장취업사건, 동일방직 투쟁 등 쟁쟁한 사건을 두루 거친 백전노장이었어요. 헐~! 진작 알았으면, 노동운동할 때 노회찬 소개받는 건데...쩝~^^
그런데, 지금 이모가 아픕니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어요. 박박 민 채로...ㅠㅠ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끝낸 상태입니다. 다행히 삶에는 지장이 없지만, 마음 한쪽이 무너졌나 봅니다. 조 목사님을 찾는 눈빛에 갈급, 절박함이 보이더군요. 조 목사님은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하면서, 옛날, 처녀 때처럼 다시 조 목사님하고 같이 살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옆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이모의 이름은 손복숙입니다.
201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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