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4.

ICOFORT TRIENNIAL PLAN 2019-2022



ICOFORT TRIENNIAL PLAN 2019-2022

CONCLUSION
As with any plan, this is also a path and not a trail, and must be flexible to adapt to new contexts. The participatory nature of planning and execution should encourage the monitoring and adjustments necessary for the objectives to be achieved. And even what is not concluded in the current management, will be an indication of future continuity, for all work at ICOFORT it is a constant addition of steps, towards the maximum objectives defended by ICOMOS in favor of Fortifications and Military Heritage.
MONITORING
Monitoring will take place by publicly following goals through online dissemination tools. Each activity must have indicators that allow the measurement of the work developed by the team.

국내외 관련 웹사이트를 소개합니다. [리스트 작성: 후쿠다 타케시(福田武史)]

http://eacs.c.u-tokyo.ac.jp/ko/reference/?fbclid=IwAR2NN5Pm8T3ToVdxWPSZGVtUQYhrSP7MGUNk-ZGgQFt3V3FHbBMWANnfI4E

참고링크

국내외 관련 웹사이트를 소개합니다. [리스트 작성: 후쿠다 타케시(福田武史)]

자텍스트 검색 (일본/일반)

한자텍스트 검색(중국/한역불전)

  • 대만중앙연구원 한적(漢籍) 전문(全文) 검색
    (台湾中央研究院 漢籍電子文献 瀚典全文検索系統)
    http://hanji.sinica.edu.tw/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이십오사(二十五史),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돈황변문집신서(敦煌變文集新書), 도장(道藏)[일부], 문선(文選), 예문류취(藝文類聚), 유선굴(遊仙窟), 악부시집(樂府詩集), 제자(諸子) 등의 검색.
  • 寒泉
    http://skqs.lib.ntnu.edu.tw/dragon/
    전당시(全唐詩),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의 검색.
  • 예문류취(藝文類聚) 색인 [사이토 마레시(齋藤稀史)씨 제공]
    http://friday.c.u-tokyo.ac.jp/ywlj_UTF8.html
  • 전양시(全梁詩) 검색
    http://home.hiroshima-u.ac.jp/cbn/rikucho/ryo/ryo.htm
  •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蔵経) 텍스트 데이터베이스
    http://21dzk.l.u-tokyo.ac.jp/SAT/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蔵経)의 검색.
  • CBETA전문(全文) 검색
    http://cbeta.buddhist-canon.com/result/search.htm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蔵経) (1〜55권) 및 만속장경(卍続蔵経)의 검색.
  • 도키샤(道気社) 한적(漢籍) 텍스트 검색
    http://www.zinbun.kyoto-u.ac.jp/~dokisha/kanseki.html
    노자(老子), 운급칠점(雲笈七籤) 등의 도교서적 검색.
  • 中国哲学書電子化計画
    http://ctext.org/zh
    수경주(水經注), 군서치요(群書治要) 등 제자(諸子) 검색.
  • 北京大学中国語言学研究中心CCL語料庫
    http://ccl.pku.edu.cn:8080/ccl_corpus/index.jsp?dir=gudai
    중국 고대어 및 현대어의 코퍼스.
  • 維基文庫(Wikisource)
    https://zh.wikisource.org/
    광범위의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텍스트 수록.
  • 설문해자 인터넷 검색 (《説文解字》網上検索系統)
    http://www.wenzi.cn/shuowen/index.HTM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설문해자의증(說文解字義證), 설문고림(說文詁林) 등의 원문 이미지도 열람 가능. 중국어 병음 입력 가능.
  • 역대 왜인전(倭人伝)자료 통합 검색
    http://www.seisaku.bz/rekidai_wajinden.html
    한서(漢書)등의 정사(正史), 산해경(山海經), 논형 (論衡), 한원(翰苑), 통전(通典)의 왜(일본) 관계기사 및 백제 칭공묘지명(祢公墓誌銘)의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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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편류


2020. 5. 17.

Walking in the footsteps of the past: Bukhansan in 1884 - part two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1884년의 북한산 - 2부
Walking in the footsteps of the past: Bukhansan in 1884 - part two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로버트 네퓨
By Robert Neff


1884년 9월, 조지 C. 포크(George C. Foulk, 서울의 주한미대사관에 임시로 소속된 미국 해군 소위)는 서울 외곽의 북한산을 방문했다.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At the foot of Jeungheungsa Temple,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In September 1884, George C. Foulk, an U.S. Navy ensign temporarily assigned to the American legation in Seoul, visited the mountain fortification of Bukhan ― just outside Seoul.

포크는 그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문을 통과하여 지났을때, 나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광경에 깜짝 놀랐다. 이것은 천 피트의 깊이의 험준한 수직 절벽의 계곡으로 둘러싸인 큰 산이었다. 


계곡 전체가 내가 지나왔던 육중한 성벽으로 이어진 2,000피트 높이의 산들의 링으로 둘러쌓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지났던) 매우 높은 성벽은 그들의 피난을 위해 뚫려있어야만 앞쪽의 한지점이었다.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것은 자연이 만들어낸 원형의 요새이다" 라고 선언했다. 

Foulk wrote of the experience: "Passing through the gate, I was amazed at the view before me. This was a great mountain walled ravine with abrupt perpendicular sides, a full thousand feet deep. The whole ravine seemed [to be] encircled by the mountain ring of 2,000 feet high on which ran the heavy wall through which I had passed; at points on the lofty wall in front which would have to be broken through in escaping by them." In his letter to his parents, he declared it to be "a circular nature-made fortress."


그는 보고서에서 요새의 내부로 들어갔을 때, 중흥사의 창고들과 화약이 장전된 화승총과 구식의 문양이 새겨진 소총이 있던 상창지 뿐만 아니라 병사들을 위한 병영과 거대한 철제문이 달린 큰 석문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As he made his way into the interior of the fortification, he noted in his report that there were great stone gates with enormous iron-bound doors, barracks for troops, as well as the storehouses of Jung-heung-sa and Sang-chang-ji, where "matchlocks and small guns of obsolete patterns" and munitions were kept.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An engraving of Jeungheungsa Temple, circa 1889. Robert Neff Collection

반면 그의 부모님께 보낸 그의 글들은 거의가 시적이었다.


계곡의 바닥으로는 환상적인 모양을 그리며 실개천이 하얀 바위들을 넘어 흐르고 있었다. 개울은 오래된 이끼들로 뒤덮이고, 포도나무 덩쿨 담장들이 몇 개의 집들에 흩어져 있으며, 몇몇 곡식 창고들과 또 다른 농민의 집들이 있는데, 그들의 조상들은 거의 900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To his parents, however, his prose is almost poetic:

"In the bottom of the ravine runs a wild stream over white rocks, worked by it into fantastic shapes. By the streams hidden by old moss and vine covered walls were a few scattered houses, some storehouses for food and other houses of peasants whose forefathers have lived here before them nearly 900 years."

화강암을 잘라 만든 옛날의 기념비(선정비)는 산 개울을 따라 열을 지어 있고, 옛 귀족(양반)이 야생의 경치를 즐기기위해 만든 작은 옛 파빌리온(정자)이 홀로 흩어져 있다. 

Ancient memorial tablet stones of cut granite lined the mountain stream and scattered along it were "little ancient pavilions in which ancient nobles sat to enjoy the wild scenery."

그는 또 한적한 곳에 위치한 곳을 염탐했다. 바로 옛 궁궐, 작고 세월에 퇴락했지만, 아직 잘 보존된 색깔과 무늬를 보존한. 이것은 행궁지-피난 궁전-이다. 다음주에 다루게 될... 


He also spied, in a secluded nook, "an old palace, small, crumbling with age, yet gay in well-preserved colors and carvings." This was Haeng-gung-ji ― the emergency palace ― which will be discussed next week.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Whimsical cuteness at the foot of Jeungheungsa Temple,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포크는 자신이 보고 자랑스럽게 얻는 모든 것을 그의 보고에서 명백히 옮겼습니다.


"이 놀라운 요새는 북한산에 있습니다. 왕의 숨겨진 비밀 장소, 그 존재는 서울 근방의 가장 비판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모두가 의심할 수 없는 곳입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며 일반적으로 그곳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원주민들이 방문하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본 한국인이 아닌 최초의 사람이었다. - 그리고 이것은 현대 군사적 관점에서 건축물에 대한 나의 평가(어드바이스)를 포함하여 볼 수 있다. 

그가 조언했던 것- 어떠한 것이든-은 알지 못하지만, 그의 부모에게 다음과 같이 인정했다. "나는 꽤오래 전에 그러한 거대 거점을 건설하겠다는 위대한 생각과 그것이 제안되고 검토하여 국가의 은둔지(보장처)로 피난하는 생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불교 사원인 중흥사로 - 그가 요새화된 사찰(승군)이라고 선언했던 - 이끌려 갔다. 군인으로서는, 그는 별로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모두 군복을 입고 머리를 깍은 사제들은 규율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Foulk was clearly moved by all that he saw and proudly gushed in his report:

"This remarkable fortress is the Bukhan, the secret hiding place of the King, the existence of which would never be suspected in all but a most critical examination of the Seoul vicinity. It is entirely unknown to foreigners and ordinarily unvisited by natives who seem averse to speaking of it. I was the first person not a Korean to whom it was exhibited ― and this with a view to obtain my advice as to the erection of modern batteries along its approaches."

What advice he offered ― if any ― is unknown, but to his parents he admitted: "I was deeply impressed with the great idea of establishing so long ago such a grand stronghold and the receding hermit-like spirit of the nation an inspection of it suggested."


He was then led to the Buddhist temple Jungheongsa ― which he declared to be a fortified temple. As a military man, he was not impressed with the "shaven priests [who] all wore soldiers clothes" but seemed lacking in discipline.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Hyunuk Park explains an engraving near Jeungheungsa Temple,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포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교가 수백 년 전에 한국에 들어 왔을 때 불교의 정신이 나갔고, 힘있고 부유한 사제들이 전쟁의 시기에 왕을 숨길 수 있는 이 산의 수호자들로 구성되었다. 사찰에는 아직 세 개의 화려한 불상과 종과 향 그릇 등이 있지만 숭배자들은 더이상 오지 않으며, 사제들은 단지 정부로부터 그들의 음식만을 끌어다 대는 시끄럽고 흉폭한 무리들이 되었다. 


포크는 “산골짜기를 따라 13개의 사원이 세워졌다”고 주장했지만, 박현욱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11곳이 있었다. 중흥사,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원각사, 국령사, 상운사, 서암사, 태고사, 진국사.(오, 나의 실수...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인데... 내 영어가 짧아서리...ㅎㅎㅎ... 원효암과 봉성암 2개 추가... 포크가 말한 13개도 맞는디...ㅎㅎㅎ)
한 시간이 지났을 때, 포크와 그의 일행은 여행을 마치고 대서문 (Great West Gate)을 통해 요새를 떠났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5km를 더 여행하고 다른 사찰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멈췄습니다.

Foulk explained: "When Confucianism came into Korea many hundreds of years ago, Buddhism in spirit went out and the priests, a strong, rich body, were formed into guardians of these mountain recesses where the king might hide in time of war. The temple contains yet its three gilded Buddhas, its bells and incense vessels, but no worshippers come, and the priests are a noisy, rascally pack of soldiers only, who draw their food from the government."

Foulk claimed there were "thirteen temples built in nooks of the ravine" but according to Hyunuk Park, a senior researcher, there were only 11: Jeungheungsa Temple (重興寺), Yongamsa Temple (龍巖寺), Boguksa Temple (輔國寺), Bogwangsa Temple (普光寺), Buwangsa Temple (扶旺寺), Wongaksa Temple (元覺寺), Gungnyeongsa Temple (國寧寺), Sangwunsa Temple (祥雲寺), Seoamsa Temple (西巖寺), Taegosa Temple (太古寺), and Jinguksa Temple (鎭國寺).

Concerned about the hour, Foulk and his party finished their tour and left the fortress through Daesomun (the Great West Gate). They then traveled for another five kilometers and stopped for the night at another temple.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Foulk's photograph of Sannyeongnu Pavillion ― named for the "elegant shape of Bukhan Mountain reflected in the water." Circa 1884. The original image can be found in the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Libraries. This copy was provided by Hyunuk Park

사찰에서 그는 "불교식 식사를 했다 - 고기가 없는 - 쌀, 기름칠 해초, 소금에 절인 채소, "장"이라고 불리는 강한 절인 콩, 모두 바닥에 놓인 작은 의자(소반:작은 밥상)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그는 "동양의 종교가 쇠퇴하는 또 다른 증거들을 보여주는, 향내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방이자 부처의 단상 아래", 그의 숙소를 보았으며, 그는 이내 잠들었다.
그는 "사실상 호텔"인 이 사찰에서 잘 잤다. 그것은 그의 남은 여행들 중에서 마지막 편안한 잠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유산팀 박현욱 선임연구원의 소중한 도움에 감사드립니다.(좀 부끄럽구만유~)

Within the temple he had "a meal in Buddhist style ― without meat ― of rice, oiled seaweed, salted vegetables, a strong bean liquor called "chang," all served on a little stool placed on the floor."

After he had eaten, he was shown his quarters where "under a shelf of Buddhas, in a room smelling faintly of incense and with all the other evidences of a decaying Oriental religion about [him]" he slept.

He slept well in this temple that was "a hotel practically." It would be his last comfortable sleep for the rest of the trip.


My appreciation to Hyunuk Park, Senior Researcher, Cultural Heritage Team of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for his invaluable assistance.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Sannyeongnu Pavilion was destroyed by a flood in 1925. It was restored shortly before this photograph was taken in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Jung-seong-mun. There is a small secret gate hidden in the bedrock near this gate. It did not have a name but was known as "Si-gu-mun" because corpses were transported through it, instead of Jung-seong-mun.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Jung-seong-mun partially hidden by the colors of autumn. There was once a water gate next to Jung-seong-mun.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Part of the fortress wall along Jung-seong-mun. November 2014. Robert Neff Collection


Daesomun (Great West Gate) of the past. Courtesy of Hyunuk Park
The present Daesomun (Great West Gate). Courtesy of Hyunuk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