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3.

기자

빌려온 이야기...



먼저 자신에게 떳떳하라. 머리로 기억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라.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인기없는 스토리를 보도하면서 당신 이웃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사실 보도를 하면서도 온갖 비난을 감내할 수 있는 용기, 동료들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한다.
우리 언론은 흔히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취재한다는 말을 듣는다. 만약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취재를 하면 동료들의 비판을 받거나 비웃음을 산다.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생각되면 용기를 갖고 밀어붙일 줄 아는 기자가 돼야한다. 그리고 그 무리들과 다른 시각으로 보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또 만약 경영진이나 당신의 부장이 틀렸을 경우, 그들에게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사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어떤 이슈에 대해 당신의 시각이 다르다고 밝히지 않는다면, 당신의 정직성은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사 입문 당시 가졌던 기자로서의 초심도 잃는 것이다.
1998년 4월 3일, 월터 크롱카이트
(워싱턴 National Press Club 창립 90주년 만찬연설 중에서..)

굳이 알 필요 없지만 알보나면 재미있는 '국가에서 운영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개인소유인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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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3.

(사진_강신규) 2025.10.29~10.31 남한산성 국제학술회의 사진 기록

 (사진_강신규) 2025.10.29~10.31 남한산성 국제학술회의 사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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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17.

ICOMOS 60th Year Celebrations

 

Vauban: Master Strategist of Siege Warfare

 https://www.youtube.com/watch?v=zuZ7f5C0Vp0

Vauban: Master Strategist of Siege Warfare

소스 1개

본 문서는 **군사 전략가 보방(Vauban)**의 삶과 업적을 다루는 YouTube 영상의 스크립트 발췌록입니다. 이 텍스트는 루이 14세(Louis XIV) 치하에서 활동한 보방이 **공성전(siège warfare)**에 혁명을 일으킨 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병사들의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해 **평행 참호(tranchées parallèles)**와 지그재그형 접근로(avancée en zigzag) 같은 혁신적인 공격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본문은 보방이 프랑스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프레카레(précarré)"**라고 불리는 상호 방어적인 **이중 요새선(double ligne de fortification)**을 구축한 전략적 통찰력도 강조하며, **베상송(Besançon)**을 요새화하는 과정을 예시로 들어 그의 **요새 건축 기술(fortification technique)**을 보여줍니다.

"Vauban, génie tactique de guerre" 대본 발췌문 (한국어 번역)
위대한 군사 전략가인 **보방(Vauban)**은 공성전술 분야에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루이 14세(Louis XIV)가 포위하기로 결정한 도시에 접근하는 공사 지휘권이 그에게 맡겨졌습니다. 이러한 매우 치명적인 전쟁 중 발생하는 인명 손실에 분노한 보방은 왕실 군대를 보호하기 위해 공격 방법을 합리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부 장군들은 성채 공격에서 300명을 잃은 것을 자랑으로 여겼지만, 그는 "잠깐, 당신의 신하 한 명의 생명은 적군 1,000명의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나는 공병들을 아끼고 아낍니다. 따라서 화약이 말하고 피가 말하지 않도록 모든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이것은 보방에게는 집착이었습니다. 보방에게는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인 마스트리히트(Mastricht)를 포위하기 위해 그는 혁신적인 평행 참호 기술을 투르크족에게서 빌려왔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포위를 지휘했습니다. 도시에서 3,000m 떨어진 곳에 보방은 두 개의 큰 선을 파도록 했고, 그 사이에는 포위군이 배치됩니다.
목표는 포위된 도시를 외부와의 모든 통신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보방이 공격을 위해 선택한 성채 축을 따라 새프(sapes)라고 불리는 지그재그 참호를 팠습니다. 왜 지그재그로 전진했을까요? 보방 이전에는 참호가 직선이었는데, 적의 포탄이 참호에 떨어지면 대량 학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보방은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이 선들을 깨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600m 지점에 이 유명한 평행선 중 첫 번째 선이 설치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체 대대와 대포 포대를 수용할 수 있는 큰 도랑으로, 성벽 폭격을 시작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포 100문, 박격포 30문을 가져갈 것입니다. 600m 지점부터 대포 100문이 발사됩니다. 즉, 10초마다 포탄 하나가 성벽에 도착하는 셈입니다. 적들이 어떻게 그곳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유지할 수 없으므로 성벽에서 철수합니다. 그동안 참호는 지그재그로 계속 파고 들어가 접근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종종 밤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벽에 도달했을 때, 그때는 지뢰를 사용하거나 포병으로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거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도시로 침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항복할 것입니다. 도시에서 350m 떨어진 곳에 두 번째 평행선(참호)을 파고 대포와 박격포를 설치합니다. 그동안 새프는 글라시(glacis, 경사 지형) 기슭까지 계속되고, 거기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평행선(참호)을 팝니다. 보방은 또다시 혁신하여 **참호 기병대(cavaliers de tranchée)**를 설치합니다. 이 흙 언덕 위에서 공격자들은 포위된 자들을 지배하여 내부로 밀어 넣습니다. 이 최종 위치에서 대포는 성벽을 폭격하여 틈을 만듭니다. 글라시 아래에 파 놓은 터널 속에서 공격자들은 엄폐하며 해자(fossé)로 전진하여 최종 돌격을 시작합니다. 보방은 마스트리히트 포위전에서 공성전의 필수적인 요소인 '시간'을 통제하는 데 성공합니다.
만약 보방이 유럽에서 어떤 장소든 20일 만에 점령할 수 있고, 적들이 방어하면서 잃는 병력보다 4분의 1만 잃으며 점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러한 영향력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과 13일 만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마스트리히트 포위전 이후, 보방식 포위 전술은 전 세계적으로 벤치마킹되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요새 공격에 관한 논문'은 15개 언어로 번역될 것입니다. 터키어, 중국어로도 번역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탁월한 방법이었고, 그의 사후 150년 동안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사람이 된 보방은 작위 대신에 고향 모르방(Morvent)에 있는 바조슈(Bazoche) 성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상당한 금액을 받았고, 그를 지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실상 봉건 영주와 다름없는 영주였습니다. 바조슈에 들를 때마다 그는 영주처럼 행동했습니다. 즉, 농민들을 맞이하고, 선물을 받았으며, 일부 세례식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영주이자 지주였으며 자신의 이점을 완전히 누렸지만, 그것을 완전히 행사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보방은 때때로 몇 년 동안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머물렀습니다. 그 이유는 국경 불안정, 특히 그가 완전히 재정비하고 싶었던 북동쪽 국경 때문이었습니다. 이 실용적인 엔지니어에게는 적국에 고립된 프랑스 영토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보방은 국경을 조화시키기 위해 인력과 군수품 면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요새들을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돌려주도록 루이 14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막을 수 없는 방어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서로를 방어하는 이중 요새화 라인이 총 26개의 요새를 형성했으며, 이것이 그가 **'프레카레(precarré)'**라고 부른 것입니다. 저는 보방이 요새를 정확한 위치에 구축한 요새 건축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지형이 없어 저항하기 극도로 어려운 이 '대로'에 직면해서 말입니다. 그는 그곳이 프랑스 침공의 치명적인 지점임을 보았고, 그 덕분에 프랑스에는 100년의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보방 덕분에 루이 14세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알고 통제하는 영토라는 아이디어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왕에게 있어 다음 과제는 프랑슈콩테(Franche Comptée)를 영구적으로 합병하는 것이었습니다. 1668년, 프랑슈콩테가 프랑스 지배하에 있을 때, 루이 14세는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는 이 영토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도록 보방을 보내 브장송(Besançon)을 요새화하게 했습니다.
보방은 그의 원칙에 충실하게, 험준한 생테티엔 산(mont Saint-Étienne) 기슭에 건설되고 두(Doubs) 강의 구불구불한 물줄기로 둘러싸인 이 도시의 독특한 지형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중앙에 생테티엔 산을, 양쪽에 두 강을, 그리고 서쪽에는 쇼당(Chaudan) 산을, 동쪽에는 브뤼지(Bruggig) 산을 보았습니다. 이 산들은 생테티엔 산을 약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수학적 감각이 매우 예민했기 때문에 생테티엔 산에 건축하고 양쪽에 높은 성벽을 세우면 이 성채를 침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음을 즉시 이해했습니다.
보방은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 그 도시와 보방의 계획은 스페인에게 반환되었습니다. 6년 후 그가 돌아왔을 때, 스페인 사람들은 성채를 건설했지만 다행히도 그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루이 14세에게 "저는 이 요새를 알고 있습니다. 성채는 매우 아름답지만 물만 있을 뿐입니다(elle n'a que les eaux)"라고 썼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가 의도한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가 판단했음을 의미합니다. 성벽은 대략 4m 높이였는데, 4m 높이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보방은 두 강의 다른 쪽 언덕에서 성채를 폭격하기 위해 대포를 설치했고 며칠 만에 스페인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2025. 10. 8.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역사의 기억을 위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역사의 기억을 위해

* 멋진글이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글을 전제함. 
관련 링크는 https://unesco.or.kr/%EB%88%84%EA%B5%AC%EB%8F%84-%EC%86%8C%EC%99%B8%EB%90%98%EC%A7%80-%EC%95%8A%EB%8A%94-%EC%97%AD%EC%82%AC%EC%9D%98-%EA%B8%B0%EC%96%B5%EC%9D%84-%EC%9C%84%ED%95%B4/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유산 해석

인류의 소중한 유산을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세계유산 제도는 그 ‘해석’을 둘러싸고 국가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발간된 이슈 브리프 제5호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유산 해석』은 이러한 일을 방지하고 본래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 필요한 관점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 중 일부인 하시마섬(군함도)에 있는 유산 현장. 등재 당시의 약속과는 달리 일본은 이 유산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강제동원으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Shutterstock.com)

세계유산 제도는 유네스코의 대표 사업 중 하나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몇몇 당사국이 유산이 지니는 어두운 역사를 은폐하거나 소수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포장된 가치만을 알리려는 시도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산업 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노동을 둘러싸고 불거진 한·일 갈등도 과거 역사를 유산 해석에 온전하게 반영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유네스코가 지향하는 세계유산의 취지에 맞게 국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슈 브리프에서는 평화로운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접근으로서 제도적 관점, 윤리적 관점, 실천적 관점에서 세계유산 해석의 의미를 정리했다.

첫째, 제도적 관점을 다룬 장에서는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담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진 로컬 가치(local value)에 무형유산과 기억 유산 등이 포함되며 유산화 과정을 통해 장소 정체성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세계유산 해석에서 유산의 특정 속성과 정체성만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 해체와 갈등 유산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포용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둘째, 윤리적 관점을 다룬 장에서는 지속가능성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세계유산 해석의 중요성을 정리했다. 유산 해석에 지속가능한 발전이 통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지역공동체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참여를 통해 세계유산의 보존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즉, 세계유산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다차원적으로 유산을 이해하면서 전체 공동체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계기가 되며,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쌍방향 의사 소통과 다양성 체험이 평화로운 공존에 있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셋째, 실천적 관점의 장에서는 일반적인 유산 해석과 세계유산 해석의 차별성을 다루고,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유산 해석에서 시민과 공동체 중심의 다면적 유산 해석으로의 담론 변화를 논의하면서, 다면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여러 사례와 함께 살펴보았다. 세계유산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유산 해석법을 모든 공동체가 옹호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유산 해석은 자유롭게 모든 집단과 공동체 등이 참가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유산 해석은 과정과 협력, 기억공동체를 중심으로 참여, 윤리의식, 포용성과 공감을 이루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해석을 둘러싼 갈등 해소를 위해 2021년 운영지침을 개정했다. 여기에는 예비평가 제도 추가, 진정성을 증명하는 속성으로서 정신과 감정에서 원주민과 지역공동체의 기억 서술, 기타 항목에서 국내외 갈등 상황과 조정안 포함 등이 들어 있는데, 이슈 브리프에서는 새 운영지침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도 제시했다. 첫째, 등재신청서 서술 항목에서 유산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 해석의 갈등 등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인권에 반하는 범죄 등과 관련이 없음을 신청 당사국이 증명하도록 의무화하며, 예비평가 단계에서 대화와 갈등 해소를 위한 당사국 간 합의를 필수 요건으로 강화하면서 분쟁 해소 이전까지 등재 절차를 보류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원주민과 지역공동체의 로컬 가치를 반영하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의무화하고, 보존관리의 항목으로 넣어 제시하는 방안이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진술문과 별개로 로컬 가치를 보유한 구성요소들의 속성을 파악하고, 문화적 중요성에 관한 진술문을 작성하여 보존관리에 활용함으로써 통합적인 보존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며, 종합관리계획 수립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로컬 가치를 함께 반영하도록 권고한다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셋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도나 세계기록유산 제도와 연계하여 유산의 가치를 재정립하도록 OUV 서술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갈등 유산의 경우에는 국제양심유산연대(ICSC) 등과 협력하여 유산과 관련한 인권 탄압, 폭력 등의 문제 검토를 예비평가 조정절차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산 해석의 핵심 개념과 원칙도 살펴보았다. 이슈 브리프는 무엇보다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강제노동, 인권 유린 등 장소와 관련한 기억을 언급하지 않거나 과거의 역사를 당사국 시각에서만 해석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장소에 기반하여 유산을 만든 환경과 시간 변화를 광범위하게 해석한다면 유산 자체에 한정하지 않고 종합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유산 해석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장소와 관련한 다양한 유산 해석을 자료로 제시·전시하고, 방문객의 경험을 환류하여 유산 해석과 홍보에 이용하는 지침을 유네스코 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세계유산 해석 분야에서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유산과 관련된 기관, 전문가,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국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대함으로써 세계유산 해석의 원칙과 기준 지침을 마련하고, 유네스코의 핵심의제를 실행적 차원에서 연결하여 모범사례를 선도적으로 발굴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재헌 건국대학교 교수(문과대학 지리학과, 대학원 세계유산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