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년 전 오늘, 사형수들의 운명을 가른 '초복' — 1711년 10월 11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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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년 전 오늘, 사형수들의 운명을 가른 '초복' — 1711년 10월 11일의 기록

315년 전 오늘, 음력 1711년 10월 11일. 숙종 37년의 어느 가을날, 조선 조정에서는 사형수들의 운명을 가르는 첫 번째 심사, 이른바 '초복(初覆)'이 행해졌다.

이날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로 남아 있다.

丙寅 / 初覆死囚。
병인일에 사수(死囚)에게 초복을 행하다.

비변사등록에서 이날의 논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해당 일자 원문은 이번에 열람하지 못했다. 대신 실록이 전하는 이 한 줄이, 그날 조정의 공기를 상상하게 한다.

삼복(三覆)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 반드시 세 차례의 복심(覆審)을 거쳤다. 초복(初覆), 재복(再覆), 삼복(三覆)이 그것이다. 1711년 10월 11일은 그 첫 단계가 이루어진 날이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일 앞에서, 조선의 법은 세 번 멈춰 서서 묻기를 요구했다. 정말 죽여야 하는가. 다시 살펴보아도 같은 결론인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 제도의 뿌리에는 유교의 민본(民本) 사상과 '인명재천(人命在天)'의 정신이 있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만큼 무겁다는 것. 임금은 이 심사 과정에 직접 관여했고, 의심이 남으면 형 집행을 미루거나 감형하기도 했다.

1711년, 숙종 말년의 조선

숙종 37년. 재위 37년 차에 접어든 숙종(재위 1674~1720)의 치세도 후반으로 접어들던 시기다. 환국(換局)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당쟁의 한복판을 걸어온 임금이었다. 그런 시대에도, 아니 그런 시대이기에, 사형수 한 사람의 처분을 앞두고 조정은 정해진 절차를 밟았다. 초복, 재복, 삼복.

실록의 건조한 한 줄 뒤에는, 죄인의 명단을 앞에 두고 무겁게 입을 열었을 대신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315년이 지나 오늘에 묻는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315년 전 조선의 조정은 '죽음'이라는 결정을 최대한 늦추고, 최대한 신중하게 하려 했다. 그들이 세 번씩이나 되물은 질문은, 오늘 우리의 법정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연 우리는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 앞에서 충분히 멈춰 서는가.


출처: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50권, 숙종 37년(1711) 10월 11일(병인) 기사 "初覆死囚". 비변사등록 해당 일자 원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검색 장애로 이번 글에서는 열람하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조선시대 문신 초상, Cleveland Museum of Art 소장 (CC0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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