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내가 죽어 육신 풍산(風散)될 때
혼백 있을 양이면,
혼(魂)은 삼각산 세 봉우리 위에 안개비로 서리게 하고
백(魄)은 내 반생을 젖어 살던 북한산 냄새 더불어
온 산괴(山塊)에 고루고루 스미게 하리.
백(魄)에 농담(濃淡)을 둘 양이면,
머리는 대남문(大南門)에 두어야 하리.
천 구백 구십 몇 년이던가 대남문 보수하며
시민들이 북한산에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갖도록
자연보호탑 매표소에서 보수의 기왓장나르기 행사를 벌일 때,
한 장이 버겁다는 걸 세 장씩이나 메고 올랐었네.
대남문 고갯마루에서 기왓장에 내 세 새끼 이름
연지(姸智),
달(達)이,
정(靖)이
흰 페인트로 써서
평생토록
세상의 사악함 그 놈들에게 범접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 원시인적인 소박한 바람을
대남문 지붕마루에 새겨넣기 위해서였네.
몸통이야 저절로 총융청(摠戎廳) 자리에 놓일 것이고,
왼쪽 다리는
염초봉 능선 가로질러 걸쳐놓으리.
백화사 근처 근세조선 환관의 후손들이 산다는 마을의 한 집에
'제기럴 세상 도나 닦아 보자'고 세들어 숨어 살던 시절의
어느 해 겨울,
그 끝자락쯤이었지, 아마.
한 바위꾼따라 무심코 오르다가
얼어붙은 바윗 경사,
시원찮은 등산화로는 감당 못해
그것은 벗어 목에 걸어 메고
맨발로 바윗살 애무하며
죽기살기로 백운대까지 거친 숨결 더불어 한판을 벌렸던 까칠때기 능선.
이듬해 봄
'우리등산화'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온세계 등산화 4천 켤레를 분해했다는,
이순(耳順)의 K2 창립자 배모(裵謀) 사장이 단독등반하다 실족사했던
콧대 센 능선,
그 위에 걸쳐 놓으리.
오른쪽 다리는
동장대 가로질러 손병희 선생 묘소 쪽으로 향하게 하리.
서울에서 동짓날 해맞이하기 제일 좋은 곳
동장대.
긴 밤 지새우고 떠오르는 새 해 맞으러
일출 시각 일곱 시 사십 몇 분에 맞추어
수유리쪽에서 오른 소설가 이채형 형과
평창동에서 대성문(大成門) 지나 성책(城柵)길 밟아 가던 내가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 찬 술 한 잔씩 나누고 헤어지던 곳,
그곳이 참하 언젠들 잊힐리야!
왼손은 의상봉에 얹고
봉우리 터줏대감 다 된 까마귀 대여섯 마리 벗하며
밤이면 원효봉 암자의 쓸쓸한 불빛 바라보리.
세상에서 왕따되어서도 그림자처럼 살아 견디는 사람들을
이문구(李文求) 형님, 충남 보령 토박이말 함께 숨어 살피셨었지.
'내 이름으로 기념행사의 언턱거리를 만들지 말라'고 유언하시고 가신
한반도 제일의 스타일리스트,
그 형님의 저승소식 듣기 위해
내 가끔은 그 까마귀들을 찾으려 하네.
오른손은
내 집 지붕을 지나
팔각정에 두어야 하리.
이순 가까이 경계혈압 진단받고
운동으로 다스린답시고 무척이나 뛰어 지나던 곳.
십 수 년 전엔, 항암치료 받던 아내가
서울대 병원 진료 후
팔각정 칼국수가 먹고 싶다 하여 들렀던 곳.
돌아오던 찻 속에서 다 토하고 말아
나는 지금도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하면 눈물겹다네.
내, 죽음에 들어 육신 풍산(風散)될 때
혼백 있을 양이면,
혼은 삼각산 하늘에 어리게 하고
백은 내 반생 함께했던
북한산 구비구비에
세포 한알한알이 꽃가루 정기되어 스미게 하리.
천산산맥 너머 아미르 티무르의 고도 사마르칸드에서 벗님들에게
*주)1 이채형 : '아아 님은 가지 않았습니다'라는 한용운 님에 대한 전기소설이
있음. 고등학생들이 문장의 귀감으로 삼음직한 문체로 이뤄졌
다는 평가의 소설.
*주)2 이문구 : '까마귀를 찾아서'라는 단편 소설 내용과 연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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