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원로 조화순 목사님 연락처를 찾습니다. 사연인즉, 지난 대보름날 집에 갔다가 막내 이모를 봤는데, 난데없이 조화순 목사님 보고싶다, 만나게 해다오, 연락처 좀 알아봐줘, 그럽디다. 그야 어렵지 않쥐. 근데 왜?
우리 이모는 '공순이'였습니다. 옛날 얘기 잘 안하더니, 엊그제는 조화순 목사님과의 인연 이야기를 길게 하면서, 꼭 한번 보고 싶다더군요. 말인 즉슨, 이모와 조화순 목사는 70년대 인천에서 만났습니다. 만난 정도가 아니라 같이 살았더군요. 조화순 목사님이 산업선교 할 때 작은 골방에서 조 목사님하고 밥해서 같이 먹고, 빨래 해드리고... 그랬대요. 이모는 그때 한창 꽃다운 나이, 스무 살 무렵 일입니다. 그 골방 앞에는 늘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늘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했지만, 조 목사님의 인간미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 뒤로 이모도 야학에 다니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섰답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 노회찬 그리고 그의 마누라^^ 지현이(?), 김근태 마누라 재근이, 야학 선생이었던 꽃미남 손학규... 정말 쟁쟁한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더군요. 그 순간 나는, "아쒸~! 우리 집에도 노동해방투사가 있었는데, 나도 노동운동 했으면서 왜 이모의 전력을 이제 알았지?"였습니다. 우리 이모 대단했더군요. 명동YMCA 위장결혼사건, YH노동자 위장취업사건, 동일방직 투쟁 등 쟁쟁한 사건을 두루 거친 백전노장이었어요. 헐~! 진작 알았으면, 노동운동할 때 노회찬 소개받는 건데...쩝~^^
그런데, 지금 이모가 아픕니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어요. 박박 민 채로...ㅠㅠ 유방암으로 절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끝낸 상태입니다. 다행히 삶에는 지장이 없지만, 마음 한쪽이 무너졌나 봅니다. 조 목사님을 찾는 눈빛에 갈급, 절박함이 보이더군요. 조 목사님은 앞으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걱정하면서, 옛날, 처녀 때처럼 다시 조 목사님하고 같이 살면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옆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 이모의 이름은 손복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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